본문 바로가기
free

한국과 우크라이나

by 현서* 2022. 3. 7.
◆ 한국·우크라이나 지정학적 도플갱어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에 주는 교훈은.

“우크라이나는 한반도의 거울로 표현할 수 있다. 유럽의 우크라이나와 동북아의 한국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양국이 처한 지정학적 환경은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매우 유사하다. 우크라이나와 한국 모두 세계적 강대국 사이에 끼인 소위 중간국가이고 각기 유라시아의 서쪽 날개와 동쪽 날개에서 역내 패권국의 세력판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지정학적 추축(樞軸)국가(Pivot State)라는 점에서 그렇다. 양국 모두 자국의 대외적 좌표 선택이 국가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우크라이나는 미·러 두 지정학적 거인이 엮어내는 여러 형태의 세력 투쟁 속에서 준(準)제로섬적인 선택을 강요받고 있고, 한국 역시

미·중 사이에서 외교적 좌표설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의 대치 상황은 한반도에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주목해야 하는 포인트는.

“2022년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에 주는 지정학적 함의는 다양한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크게 2가지 측면을 강조하고 싶다. 먼저 동맹의 소중함도 새삼 확인되지만 자강(自强)이 우선이라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위기에 미·러의 다툼과 전략만 보일 뿐 우크라이나는 안 보인다. 우크라이나 위기 해소를 위한 미·러의 협상에 정작 우크라이나의 자리는 없었다. 풍전등화의 국가적 위기를 외세에 의존해야 하는 약소국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누란지세의 위기는 사실 우크라이나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정치권의 무능과 리더십 부재, 정쟁의 일상화, 만연한 부정부패, 극심한 부의 편재, 만성적인 경제위기, 고질적인 동서 지역갈등 등을 지적할 수 있다. ”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장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강연하고 있다. 홍완석 원장 제공

 

-우크라이나 내부 문제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의미인가. 
 

“스스로 힘을 키우지 않으면 주변 강대국들의 위세에 휘둘리고 안보와 국익을 침탈당할 수밖에 없는 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1905년 미·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그렇고, 1945년 미·소의 남북분단이 그렇고, 1953년 한국이 빠진 미·중의 휴전협정이 그렇다. 바로 여기서 우크라이나 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 하나를 찾을 수 있다. 의존은 힘과 외교력을 약화하기 때문에 부국강병을 토대로 부단히 안보와 외교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시점에서 한국에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지속적인 국방력의 강화와 함께 동맹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전시작전권의 조속한 환수라고 본다. 자강이 결여된 세력균형은 결국 외세에의 종속으로 귀결되었다. 미·중·러·일로 대표되는 세계적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야 하는 지정학적 숙명성을 지닌 한국이 끊임없이 경제력의 고도화, 군사력의 첨단화, 문화력의 세계화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 自强과 국익기반 실용외교 필요

 

-한국에 필요한 외교안보적 사고(思考)는.

“국익 우선의 실용외교 강화도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시사점이다. 말하자면 오랜 기간 한국외교를 짓눌러왔던 대외정치적 도그마로부터의 탈각(脫却)이다. 우크라이나의 페트로 포로센코(2014∼2019년 재임 중 친서방 반러 정책 추진) 및 젤렌스키 대통령 정권이 보여주듯 미·러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충돌하고 민감하게 교차하는 지정학적 공간 우크라이나에서 외교노선의 양자택일은 결국 스스로 대외정치적 입지를 좁혔고 국익을 침식시켰으며 안보위기를 초래했다. 국내적으로도 사회적 긴장을 높였고 경제·금융 안정성도 해쳤다. 미·중, 미·러 사이에 있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교훈이다. 

-한국은 미·중·러·일 강대국에 둘러싸여 더욱 복잡한 상황인 듯하다.

“동맹관계인 미국, 전략적 관계인 중국과 러시아 모두 21세기 한국의 생존과 국가적 번영을 좌우하는 글로벌 강대국이라는 점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한·미, 한·중, 한·러관계의 지정학적 숙명성에 비추어 양자택일 외교 또는 진영외교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의 대외정치적 선택지는 한국의 국익과 안보에 이롭지 못하다. 한국외교의 대상들이 모두 끊임없이 움직이는 목표물이고 동시에 한국 자신도 쉬지 않고 변동하는 행위주체라는 점을 명료히 인식하는 가운데 국제관계에 대한 관성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현실에 기초한 대외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그 방향성은 철저히 냉철한 국익기반의 실용외교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에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이자 핵심 교훈일 것이다. ”

 

●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장 겸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학과 주임교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 ▲同 대학원 동구지역연구과 석사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 정치학박사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장 및 러시아연구소 소장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free'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 풍경  (0) 2022.04.09
병원방문  (0) 2022.03.07
사이클 버디  (0) 2022.02.17
아침부터 넋두리  (0) 2022.01.15
어느 카페  (0) 202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