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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별.시.

선종하신 맹상학 마르첼리노 신부님을 기리며(대전교구 2023/01/31)

by 현서* 2023. 2. 7.
내 삶은 그야말로 그분께서 제작하신 한편의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흐르는 시간의 강물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사제의 여정이 마냥 행복하다.

서른 살 무렵 나는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멋진 자동차도 있었고, 예쁜 여자 친구와 결혼해서 성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연구소를 다니면서도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참 열심히 했다.
대전 자양동의 복지시설과 판암동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적어도 한 달에 서너 번씩 달려갔다.
벽지를 갈아드리고, 먹을 것을 나누고, 용돈을 드리고, 그리고 말벗도 해드렸다.

성가정을 향한 소박한 꿈을 안고 생활하던 중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와 이별을 하게 되는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다. 이별의 상처가 너무 컸다.
우울증이 생겨 식욕도 잃고, 불면증으로 날마다 밤을 새우다보니 신앙생활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때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죽고 싶은 생각뿐,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렇게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가 마침 판공성사 때였다.
그래도 성사는 보아야 되겠다는 마음 하나로 도룡동성당에 갔다.
성사를 기다리는 줄은 마치 고속도로 의 정체된 차들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슴은 그 차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처럼 마냥 답답했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고해소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마치 재와 연기를 뿜어내는
분노의 활화산처럼 누군지도 모르는 고해사제를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 하느님 너무너무 미워하고 저주한다. 왜 하필 나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냐.
그렇게 교회에서 봉사하고 성가정 이루면서 착하고 소박하게 살려고 했는데,
왜 하필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시냐. 그래서 하느님 저주한다." 하고 고백했다.
그렇게 몇 십 분을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고 나니 고해소에서 신부님이 말문을 여셨다.

"나도 잘 모르겠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에

"이 좁은 인간의 머리로는 잘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형제님에게 좀 더 큰일을 하시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보속으로 요한의 첫째 편지를 읽어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퉁퉁 부은 눈으로 성경을 펼쳐서 읽어내려 가는데,
성경의 이 구절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 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 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도 가고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요한 4,15-17)

내 영혼을 뒤흔든 이 성경구절은 육신의 쾌락과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나를 
온전히 하느님을 향해 돌아서게 하였고, 인간의 거룩한 영혼과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바오로 사도처럼 지금까지 편안하게 앉은 채로 즐기면서 살아왔던 삶의 말 안장에서 떨어진 다음 해인
1998년 3월, 서른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전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7년의 신학생생활은 도룡동성당이 아니라, 성당을 옮겨서 2년 동안 청년레지오 활동을 한 번동성당에서 하였다.
9년이라는 시간은 죽을 만치 고통스러워했던 과거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2005년 1월25일 마침내 사제수품 후 소임받은 첫 임지가 희한하게도 도룡동 성당이었다.
주임신부님께 미리 인사드리려고 성당에 갔는데, 입구에 경당이 있어 들어가 예수님께 꿇어 기도드렸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그 놀라운 은총과 사랑에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나중에는 온몸이 떨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하고 망치로 크게 얻어맞은 듯 굳어버렸다.

내가 기도하고 있던 바로 그 자리는 9년 전 내가 하느님을 미워하고 저주했던 그 경당이었다.
하느님을 미워하고 저주했던 바로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는 나를 당신의 거룩한 사제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었다.
그때야 깨닫게 되었다. 왜 그런 아픔과 고통을 주셨는지.....
하느님께서는 9년이 지난 다음에야 답을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좀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라는 고해사제의 말처럼,
하느님께서 이 미천하고 악한 사제에게 베푸시는 사랑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울고 또 울었다.
사람에게 고통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고통이 없으면 몸만 자라고 영혼은 자라지 않는 식물인간과 같다." 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며,
그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좀 더 큰일을 하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받는 예수님을 통하여 인류에게 구원을 선물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지고 있고, 품고 있는 고통의 십자가 위에 부활이라는 향기로운 꽃을 피워주실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고통을 이겨내지 않고 그리스도 향기를 풍기는 사람은 없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에 대하여 반드시 답을 주신다.
그러나 그 답은 지금 줄 수도, 아니면 몇 년이 흐른 다음에 줄 수도,
아니면 우리가 하느님 품에 들어가서야 듣게 될 수도 있다.
답을 듣게 되는 그때가 깨달음의 순간이며, 구원의 순간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는 순간이다.
이 세상의 것에 절대로 얽매이지 않는 부활의 날개를 얻게 되는 은총의 순간이다.
이렇게 고통을 통해 얻게 되는 은총의 순간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임을 깨닫게 되어서 매일매일 행복 할 것 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늘에 펼쳐진 저녁노을을 볼 수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하느님의 종인 이 미천한 사제에게
오늘 하루도 기쁨으로 살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

♡맹상학 마르첼리노 신부님
[가톨릭 다이제스트에 기고하신 글]
 
 
맹상학 마르첼리노신부님 마지막
편지(유언)
ㅡㅡㅡ
대전교구 맹상학 마르첼리노 신부님께서 2023년 1월 31일 17시 30분 요양 중 선종하셨습니다.
신부님은 2005년에 서품을 늦은 나이에 받으셨고, 그 형님께서도 사제로 계십니다.
대전교구에서는 오랫동안 이주 사목을 전담해 오셨는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가시기 전 유언처럼 사목자로서 편지를 남기셨습니다. 그 편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유합니다. 
 
대전교구 맹상학 마르첼리노 신부님의 평화로운 안식을 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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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맹상학 신부(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 
 
바람처럼 홀연히 이 세상에 왔다가 구름처럼 하느님 품으로 흘러갑니다.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는 말씀처럼 천년을 하루같이 사시는 그분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갑니다.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마음 때문에' 두렵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믿고 섬기고 사랑했던 그분을 이제 곧 만날 수 있다는 '마음 덕분에' 설렙니다. 
 
 사제는 '사랑에 빚진 자'라고 했죠. 하느님 사랑에 빚지고 부모님 사랑에 빚지고 세상 사람들 사랑에 빚만 진 한 사제가 사랑하는 어머니와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가슴속 깊이 묻어뒀던 글을 남깁니다. 
 
 이 세상에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마리아! 불교도였던 어머니! 자식들이 사제품을 받지 못할까봐 낯선 종교에, 낯선 기도문, 낯선 세례명을 십자가처럼 평생 걸머진 사랑 많은 나의 어머니! 천주교 신부 되면 마누라 없이 평생 혼자 살아갈 것이 걱정되셔서 뒤돌아 눈물을 훔치시던 호수 같은 우리 어머니! 
 
 남편 요셉을 성요셉축일에 하늘로 먼저 보내시고 홀로 밤을 지새우셨던 어머니! 그래도 아버지 곁에 묏자리를 사놓으셨다고 죽어서도 남편 곁에 있을 수 있다고 마냥 소녀처럼 행복해하셨던 우리 어머니! 평생 쌓아둔 중압감을 못 이겨 중풍까지 끌어안고 휠체어에 앉아 홀로 집에서 수도자처럼 수행 생활을 하고 계신 어머니 마리아! 
 
 어머니가 그렇게 바라던 지혜로운 며느리와 토끼 같은 손자ㆍ손녀를 품에 못 안겨드려서 미안합니다. 외로워하시는 어머니 곁에 있어 주지 못하고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간간이 드리는 용돈, 생활비로 스스로 아들 노릇 다했다고 자족했던 이 불효자식을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어머니! 바람이 찹니다. 몸 건강하세요! 이제 둘째 아들, 둘째 신부(神父)는 먼저 떠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셔요! 언젠가 형님신부님이 아버지 장례미사 강론 때 이야기한 것처럼 어머니가 힘들 때마다 천사가 돼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곁에 머무를 겁니다. 
 
 어머니가 외로울 때면 어머니 꿈속에 나타날게요. 우리 아주 가끔씩  꿀같은 데이트를 해요! 어머니 덕분에 이 아름다운 세상 잘 쉬다 갑니다. 정말 정말 많이 사랑하고 먼저 가서 미안합니다. 엄니! 행복하세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주님 안에서…. 
 
 제가 평생 섬겼던 주님은 아무것도 없이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제 사제관을 뒤져보면 남은 것이 많이 나올 겁니다. 하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교회가 허락한다면 화장해서 뿌려주십시오. 
 
 사제품을 받고 첫 사순시기 때 장기기증을 서약했습니다. 쓸 수 있는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시고 각막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선물해주십시오. 2명에게 각막을 선물해줄 수 있다 해서 사제로 사는 동안 세상에 더러운 것보다 거룩한 것, 아름다운 것 많이 많이 보려고 노력했으니, 제 각막을 갖게 되는 사람은 여생 동안 사랑스럽고 행복한 것만 바라보길 원합니다. 
 
 끝으로 행여 이 부족한 사제로 말미암아 상처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청합니다. 수행이 부족해 더 가난하게 살지 못하고, 더 나누면서 살지 못하고, 더 용서하며 살지 못하고, 더 겸손하지 못하고, 더 사랑하며 살지 못해서 나와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교회의 종으로 살게 해주셔서…. 사는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늘나라 가서 하늘 아버지 만나면 청하고픈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하느님 사제로 살고 싶습니다."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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